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공혜경 시인 시집 발간 축시 낭송 모임을 시작으로 다시 모였습니다
면면이 모두 다 시의 멋과 맛을 넓이 펴시는 운문의 전도사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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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간의 만남의 기록이다.
역사에 시작이 있듯이 누구나 첫 만남이란 게 있게 마련이다.
상대가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 얼굴이나 겉모습을 보고 첫인상이랄까, 그에 따라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마음에 든다거나 아니면 밥맛이라거나, 아니면 삘(feel)이 팍 꽂혔다거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속담이 있다. 그 말을 패러디해 <속옷이 스치면 연인>이란 아재개그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인연은 만남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 인연이 깊어지면 은인이 되기도 하고 연인이 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인 것이다.
얼마 전에 미혼인 아들이 있는 지인에게 “아들 소개팅 시켜줄까? 했더니 손사래를 쳤다. 지인은 아들이 <운명적 만남>을 기대한다는 것 같다고 했다.
영어에 우연한 만남(accidental)과 뜻밖의 대상과의 만남(encounter) 그리고 은밀한 만남(secret meeting)이 있는데, 이 세 가지를 모두 합한 것 같은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어느 낯선 여행지에서 상대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리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우리 이웃에 살던 은정이가 기억났다. 그 아이는 일찍이 인터넷 채팅으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었는데 이내 성격 차이로 이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가을날, 출근길에 시내버스정류장에서 키가 큰 훈남과 눈이 맞아 재혼을 했다고, 은정 엄마가 자랑 아닌 자랑을 하던 기억이다.
소개팅으로 만나든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든 다 인연으로 만나는 것일 터, 그러나 <악연>이라 하여 만나서는 안 될 만남도 있는 것 같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그 또한 운명적 만남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때 남·북 및 전국 이산가족 찾기 행사로 눈물을 펑펑 흘렸던 시절이 있었다. 만남에 대한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했던 거국적이고 세계적인 이벤트였다. 하지만 이산가족을 만나 기뻐하는 집이 있었는가 하면 오히려 감추었던 자식이 나타나는 바람에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집도 있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라디오에서 가수 노사연의 <만남>이 정겹게 흘러나온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에 바램이었어...... 운명이었기에......> 이 또한 수많은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가요다.
6년 전 겨울 어느 날 아침방송을 진행하다 심장마비로 애석하게 작고한 절친 J가 하루는 가수 노사연을 만났다고 했다. 그들은 강원도 H읍 초등학교에서 6년을 토닥거리며 공부했던 사이였다. 성장하여 한 사람은 유명가수로 한 사람은 방송국 음악담당 PD로 만났으니, 동화의 주인공 같은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만남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겠으나, 단 한 번을 만나도 만난 것 같은 사람이 있고 매일 수 없이 만나도 만난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몇 번 만나지 않았는데도 일생을 함께 하는 동반자도 있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 한 교실에서 공부한 L이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아버지가 업무상 자주 전근을 다니는 바람에 1년 만에 헤어져야했지만 각자 다른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가끔 소식을 주고받다보니 그 아이 가족이나 우리 가족 모두 서로를 잘 알고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L네 아버지와 우리 선친이 고향이 같은 이웃 마을이었던 것이다. 아마 만남에는 어떤 운명적 DNA 랄까, 모종의 끌림이라는 자기장 같은 인연이 있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우리가 일생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쉽게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보통사람인 우리는 그저 악수를 나눈 정도의 사람까지 합쳐도 1만 명을 넘지 않을 것 같다.
초등학교 동창생 100명, 중학교와 고등학교 동창생 500명, 대학동창은 300명(써클 포함) 정도 될 것 같고, 사회에 나와서 업무상 전국을 돌아다니며 알게 모르게 명함을 주고받았지만 대략 2천 명 남짓 될 것 같다.
반면 노사연 같은 가수나 탤런트, 미술가나 시인 등 예술인, 정치가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란 계산이다. 간접적이고 일방적이긴 하지만 거리에서나 작품, 공연무대, 방송을 통해 수 없이 만나기에 그렇다.
성자인 예수는 국경을 초월해 세계인이 알고 있다. 성경을 통해 만나기 때문이다.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는 장면이 요한복음(4장)에 나온다.
“저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시겠지요?”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직접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하자 예수는 그렇게 자상하게 대화를 통해 자신을 소개한다.
우리의 서산대사와 제자의 만남도 살펴보자.
청허(淸虛)의 주인을 알고자 왔는가 欲識淸虛主 (욕식청허주)
상봉하려해도 결코 상봉하지 못할 것이네 相逢定不逢 (상봉정불봉)
모름지기 아시겠지만, 흰 구름 밖에 須知白雲外 (수지백운외)
별도로 기이한 봉우리가 하나 더 있다네 別有一奇峯 (별유일기봉)
청허는 서산대사의 법호(法號)다. 어느 날, 숭의선자(崇義禪子) 라는 스님이 서산대사를 만나자고 청을 넣었던가보다. 하여 답장으로 시 한 수를 지어 준 것이다.
눈에 보이는 구름 낀 서산(묘향산)은 그대가 만나려는 나 청허가 아니라고.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저 구름 밖에 있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니, 모두가 기이하다고 하는 그 서산(西山, 극락정토)에서 여법하게 만나세. 곧, 겉모습으로 만나지 말고 속 깊은 마음으로 만나자는 것이리라.
<대화>가 없는 만남은 만남이 아니다. 하여 한해를 보내며 안부전화나 짧은 문자로라도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쁜 현대인의 간절한 만남이 아닐까 싶다.
새해부터 다시 날씨가 추워진다는 일기예보다.
친구 L에게 이모티콘이라도 보내봐야겠다. 건강을 잘 챙기고 지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