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공혜경 시인 시집 발간 축시 낭송 모임을 시작으로 다시 모였습니다
면면이 모두 다 시의 멋과 맛을 넓이 펴시는 운문의 전도사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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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토끼
권 혁 수
사춘기 때, 어느 봄날 나도 모르게 봄바람에 취해 소양강댐 안에 있는 청평사까지 배를 타고 들어가 오솔길을 걸었다. 어느 젊은 연인들도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은 큰소리로 떠들며 웃어대곤 했다. 그때 마침 나비가 한 마리 허공을 날아가는 게 보였다.
여자가 “어머나, 호랑나비네, 너무 멋져!”하고 소리쳤다.
남자도 “오, 호랑나비. 정말 멋진데.”하고 감탄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내 눈에는 그게 호랑나비가 아니라 제비나비로 보였다.
하여 나는 “에이, 제비나빈데.”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은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 그렇지만 그들은 소 닭 보듯 나를 무시하고 다시 깔깔거리며 숲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들의 공허한 눈빛과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먼 훗날 나는 내가 왜 그날 그 연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쓸데없는 말을 지껄였는지 두고두고 후회를 했다. 그들에겐 나비가 호랑나비거나 제비나비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겐 오직 사랑의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마 하늘에 까마귀가 날아갔어도 그들은 꾀꼬리가 날아간다고 했을 런지 모른다.
최근에 나는 또 그런 실수를 했다. 휴일 저녁에 아내와 아파트 단지 주변을 산책할 때였다. 가로등이 멀어 다소 어두운 길을 걷던 아내가 갑자기 소리쳤다.
“토끼들도 잠 안 자고 산책을 나왔네!”
아파트 단지 조경용 조형물을 보고 아내가 나름 정감 있게 표현한다고 꺼낸 말이었다. 그런데 내 눈엔 그것이 토끼가 아니라 흰 양떼로 보였다. 저녁이라 주위가 어두운 탓에 시력이 좋지 않은 아내가 착각을 한 것 같았다. 하여 나는 무심코 “토끼가 아니라 양이구만.” 하고는, 아차 싶었다. 학술대회 토론장도 아니고 굳이 그 조형물의 모양을 따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순간, 산책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하지만 아내는 현명했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 피곤하게 다툴 일이 아니라는 듯 분위기 전환용으로 개그맨 엄영수와 가수 조영남의 재재혼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어제 TV에 조영남하고 엄영수가 나와서 웃기는 거 봤어요? 두 번 세 번 이혼한 게 마치 자랑인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아내는 그들처럼 화기애애하게 긍정적으로 사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단수다. 은근히 내 마음의 모서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실수를 지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다. 하지만 아내처럼 재치 있게 에둘러 지적해주는 것은 지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왜 또 실수를 저지르는 것일까!
“뭐, 우리도 이혼 한 번 하자는 거야?”
실수를 하지 않고 하루를 살 수는 없을까!
하지만 나의 사소한 실수가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몇 년 전인가, 어느 가을날 미모의 여자로부터 문자가 한통 왔다. <00미용실 오픈, K시인님을 초대합니다.> 라는 모바일초대장이었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고향동네 미용실에 여자 견습생이 한 사람 들어왔다. 여자는 소양강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어 졸지에 도시로 흘러들어오게 된 수몰지역 유민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마침 가을축제 문학의 밤 행사를 대비해 머리를 단정하게 커트 하려고 그 미용실에 들렀고 머리를 커트하는 동안 몇 번이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소녀티를 막 벗은 듯 청신하다. 나는 그녀에게 주소를 물어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에 대한 첫인상을 편지에 담아 우체통에 넣었다.
며칠 후,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문방구에서 파는 편지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봉함편지였다. 자기도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이었다는 내용이 짧게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오자와 탈자가 너무 많이 눈에 띄었다. 나는 정중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그녀의 편지를 붉은 볼펜으로 수정해서 다시 보내주었다. 문학도답게. 그리고 그녀의 답장을 기다렸다. 바보처럼.
답장을 기다리며 가을축제 문학의 밤 초대장도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나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더 바보처럼. 그런데 문학의 밤이 아닌 축제 페스티벌에 그녀가 나타났다. 축제 마지막 날 밤, 대운동장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나타난 것이다. 나 보란 듯이.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이번엔 그녀가 나에게 초대장을 보내왔다. 미용실 개업식에 와달라고 아주 정중하게.
나는 궁금했다. 그녀가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고 모바일문자를 보내왔는지 궁금했다. 아니 그 보다도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왜 나를 기억하고 초대했는지, 그 의도가 더 궁금했다.
그녀는 미용실 문 앞에 나와서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를 반겨주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나도 그녀에게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하고 손을 마주잡았다. 순간 나는 솔직히 우습게 느껴졌다. ‘영광’이라니! 미용실 개업이 무슨 거창한 행사라고 영광이란 말인가. 아니 여전히 미모인 그녀를 만난 것에 대한 립 서비스(lib-service) 인가? 그러나 곧 무심코 말한 내 말이 퍽 의미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 여기 오늘 초대한 K시인님은 저의 큰 은인이십니다. 오늘의 제가 있게 해주신 분, 이 분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저는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하고 그녀는 거창하게 서두를 꺼냈다. 이어서 그녀는 20년 전, 내가 그녀의 편지의 맞춤법과 오류를 수정해주었던 것부터 그때의 충격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대학까지 마치고 오늘, 성대하게 미용실을 오픈하게 되었다는 등 자신의 역사를 참석자들에게 차분차분 들려주었다. 그녀는 또 한 사람을 소개했는데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이었다. 자신의 단처를 깊이 이해해주고 보듬어준 과학 선생님이라고 간단히 그러나 사랑스럽게 소개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랄까, 나의 실수가 그녀의 인생에는 큰 의미가 되었던 것이다.
입춘이 지났는데 눈이 펑펑 내린다. 창밖을 내다보며 그날의 일을 생각하자니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인생에 가치 있는 것은 없지만, 인생은 달콤해야한다.>
4천5백 년 전 수메르지방의 점토판에 새겨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