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벽년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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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따스한 봄날,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느라 서울 우면산자락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 뜰을 걷게 되었다. 뜰 옆에는 야외카페 겸 식당이 있었는데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사람들로 몹시 붐볐다. 그런데 거의 여자들만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함께 걷던 동료가 한마디 한다.
『행복한 여자들 세상이야.......』
그는 이어 전자레인지, 세탁기 등 전자제품이 발달해 여성들이 주방과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삶에 여유가 생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옛날 옛적에 남자가 사냥을 나가면 여자들은 우물가나 빨래터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었듯이, 그 시절처럼 여자들이 카페에서 아파트 시세를 논하고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이라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동료의 말을 공감하면서도 선뜻 동조를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터키의 어느 농촌마을 진풍경이 생각나서였다.
몇 년 전인가, 친목회원들과 터키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대낮에 여자들은 밭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자들은 인근 카페에 모여 앉아 차담을 나누며 노닥거리는 것이었다. 그 연유를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가이드 왈, 그것은 남자가 일을 하기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나라만의 전통풍습이라는 것이었다.
터키는 전통적으로 남자는 4명의 여자와 결혼을 할 수 있는데 남자들은 카페에 모여앉아 가정과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한 발전방향을 논하고 여자들은 밭이나 올리브농장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육체노동을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언젠가 우리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족보에서 할아버지 함자 옆에 할머니 이름이 둘이나 셋 씩 적혀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나 다소 수긍은 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우겠으나 우리 사회도 과거 조선시대에는 사정이 터키와 유사했던 것 같다.
물론 터키도 현재 헌법으로는 1부1처제를 택하고 있다. 가이드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법이라고 설명했다.
태국은 한술 더 떠 사정이 심각했다. 태국은 아예 일부다처제인데 심지어 8명의 아내를 둔 남자(옹담 소롯, 당시 34세)의 가족 실상이 작년 5월에 우리나라 TV방송에서 특집으로 방영된 적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2017년에는 120명의 아내를 둔 방콕의 인근마을 프롬니에 살고 있는 사업가 프라설트씨 (당시58세)의 사생활도 버젓이 한 매거진에 보도된 바도 있다.
일부다처제는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해 케냐,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프리카와 이슬람권에서 대부분 시행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인도의 일부지역과 네팔과 티베트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티베트의 경우는 형제가 아내 한 명을 두고 사는 집이 있는가하면 어머니와 딸이 한 남편을 섬기는 색다른 일부다처의 가정도 있다. 이 경우는 어머니가 먼저 과부가 되어 가족을 부양할 남자가 필요한 경우로 어머니는 먼저 새 남편을 맞이한 뒤 딸이 성장하면 자기 남편인 딸의 계부와 결혼시켜 남편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대를 이을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가정에 입양된 양자는 장녀뿐 아니라 나머지 딸들과도 혼인을 하여 대를 이어가며 산다고 한다. 이는 모계사회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나라 미국의 사정은 어떤가?
네프릭스에서 미국의 인기드라마 『보드워크 앰파이어』를 보다보니 이민사회의 연방 국가답게 가정도 연합적인 가족구성인 경우를 볼 수 있었다.
드라마의 유력한 조연 지미(제임스의 애칭)는 애틀랜타에 정착한 스코틀랜드 이민 가정에서 서자로 태어난다. 그는 세계 제1차 대전 때 프랑스 전투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결혼, 아들 토미를 낳는다. 그는 밀주 밀매갱단의 보스로 활약하다 조직 간의 갈등으로 이복형이며 주인공인 너키에게 살해당한다. 그 바람에 아들 토미는 아버지 지미의 동업자인 해로우와 그의 아내 새고스키가 데려다 키우게 되지만 해로우 역시 갱단의 암살사건에 휘말려 죽음으로써 토미는 새고스키와 같이 지내다 해로우의 누이네 가족을 만나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마치 집시나 유목민처럼 혈족이 아닌 사람끼리도 새로이 가정을 이루고 생존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1920년∼30년대 미국 동부지역을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비록 100년 전 미국 이민사회의 가족과 가정 형태이긴 하지만 그런 양상은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현대에도 사회적 여건에 따라 가족이 뿔뿔이 이산하기도 하고 새로이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기도 하며 반복적으로 살아가기에 그렇다.
일찍이 미국으로 이주했던 우리의 동네친구 S의 경우도 그랬다.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인 그의 선친은 1.4후퇴 때 가족을 고향에 남겨두고 단신으로 월남하여 남한에서 다시 재혼, 아들S와 딸 셋을 낳았다. 하지만 그에겐 성씨가 다른 K형도 있었는데 그의 K형은 그의 모친이 그의 선친을 만나기 이전에 낳은 6.25전쟁 중 사별한 남편의 아들이었다.
S는 대학을 졸업하자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낳았고 IMF 경제위기 때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고향이 그리워 25년 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부인과 아들과 딸들은 모두 미국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그에겐 가정이 없다. 가족만 있을 뿐이다. 멀리.......
오늘 기온이 영하 14도라 한다. 이번 주 내내 춥다는 일기예보다.
S의 가족이 언제 돌아올는지 알 수 없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어디서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