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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석(sbs3039)
시 처럼 살기
-벽년해로-

세월에게는 정지 신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벌써 해거름 녘
세상이 붉게 저물어 가고 있다





시詩사랑하기 바빠서 늙을 틈 없네*서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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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독법--시 . 이순주
2024-01-17
조회수 : 332

고양이 독법
 
 
 
달은 고양이에게 비린 밤을 대여합니다  
전신주가 배가 불룩한 쓰레기봉투를 낳고,
고양이 눈에 120촉 알전구가 켜지는 시간이에요
고양이 등에서 밤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어둠 속에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찢고 읽어야 할
문장이 적혀 있고요 
고양이는 그 알토란 같은 문장을 읽어갑니다
이 골목 저 골목, 골목의 심장이 되어 밤을 누리고 다니다가
빈속을 채웁니다
펼쳐진 밤의 페이지를 넘기곤 합니다
그때 골목의 담장은 팔랑팔랑 넘겨지는 페이지,
허기를 위하여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은밀하고 민첩합니다
길들인 밤의 독법이 노련하지요
어두운 골목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담벼락을 건너뛰기도 하는데
그때 독파한 문장으로 겨우내 계절풍을 앓습니다
홀연히 사내가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로
한 마리 흰 나비를 어둠 속으로 날려보내자
오래 사육된 밤이 납작 엎드립니다
고양이는 어둠 벽에 숨어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밤을 읽어갑니다
울음소리를 벽에 발라 책장을 넘기는,
두근거리는 골목 하늘가엔
밤 고양이를 키우느라 지친 달도 주린 배를 움켜쥐지만
불 켜진 창문의 굶주린 페이지는
새벽까지
달이 차오를 때까지 끝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