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벽년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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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개다
권 혁 수
<책상은 책상이다>(페터 빅셀 저)라는 책이 학원가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함께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았던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한 마디로 절묘하게 풍자한 것이 젊은이들의 정의심을 호리지 않았나 싶다.
요즘엔 어떤가? 대개 어느 집이나 책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컴퓨터나 노트북이 놓여있지 않은가. 혹 대물림한 헌 책상이 있다하더라도 모양만 책상이지 대부분 생활용품 보관대로 용도가 변경된 실정이다.
학생은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더 치열하게 공부를 하는 학원생이 되었고, 공부 보다는 컴퓨터게임을 더 많이 하는 컴퓨터게임 마니아 시대라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시대에 개 견공(犬公)의 사정은 어떤가? 과연 개는 여전히 개일까?
최근 통계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가족이 1500만 이라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천만이라 한 것 같은 데 어느새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치다.
동물병원에 가면 <00개 어머님> 혹은 <아무개 아버님> 하고 대기석에 앉아있는 보호자를 부른다. 그러면 호출된 사람은 <네 - > 하고 벌떡 일어나 재빨리 수의사에게로 달려간다. 개 전용호텔이 있는가 하면 개전용 화장장에서 화장을 하여 개 납골묘에 안치를 한다. 게다가 해외토픽에 재산상속을 하겠다는 사람까지 있다는 것을 보면 이제 개는 개가 아니라 <새로운 신인류>라 해도 무방할 듯싶다.
아니 일부 반려견은 오히려 보통사람보다 더 대접을 받는 지도 모른다. 공원에 나가보면 개가 걷기 힘들어한다고 가슴에 안고 다니는 산책객에 어린아이처럼 전용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딩펫족(딩크족+반려동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언젠가 지인의 딸이 외국에 어학연수를 갔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국제전화로 부모님 안부부터 묻는 게 아니라 개 밥 줬냐고 해서 주위 사람들을 웃프게 한 기억도 있다.
그런가하면 회사 동료 P는 반려견 암 수술비로 400만원을 썼는가 하면, 동네 친구 K도 공장에서 유기견을 한 마리 기르고 있는데 다리를 다쳐 치료비로 170만원을 썼다고 개탄을 했다.
꽤 오래 전에 <개 의료보험>에 대해 칼럼을 쓴 소설가 L 역시 개를 키우다 동물병원에 다녀온 후, 개 진료비가 사람 진료비보다 턱없이 비싼 것을 경험하고 그 필요성에 대해 강력히 주장했었다.
수의술(獸醫術)도 엄청 발달해 최대 16년 정도이던 개 수명이 20년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수명뿐 아니라 개문화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몇 년 전, 서울 서초구 로터리를 지나다 반려견 페스티벌 현수막을 본 적이 있는데 지난 5월에는 강원도 춘천의 강아지숲에서 전국 규모의 반려동물 페스티벌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연 이후, 국회에서 동물보호법을 통과시켜 지난 6월20일부로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각계에서 동물 복지와 권리 수호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는 있지만 개에 대한 문제는 보다 조심 또 조심, 신중하게 시행돼야 한다는 개인적 바람이다. 나로선 어린 시절에 겪은 맹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렇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휴일저녁에 동네산책을 하려는데 이웃 주민의 개들이 맹렬히 싸우는 바람에 산책하기가 겁이나 발길을 돌려세워야했던 것이다.
물론 살아있는 생명은 어떤 존재이든 지구의 한 일원으로서 존중돼야 한다. 그렇다고 불쾌감이나 상처가 날 정도로 인권이 침해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개를 위해서 불안과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인류 최대의 학살자 아돌프 히틀러가 채식주의를 표방하며 1933년에 세계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제정했다는 사실 역시 난센스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히틀러, 그는 본래 인간의 탈을 쓴 채식동물이었나?)
차제에 반려동물의 권리만 존중하고 보장할 게 아니라 의무사항도 강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인터넷에 보면 가수나 배우 등 유명인의 신상명세서에 반려견 이름도 올라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개를 진정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당당히 가족부에도 등재를 하여 권리만큼 주민세도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여권(旅券)처럼 개 신체에도 개와 개주인의 신상정보와 방역상태를 입력한 전자칩을 장착시키고 다소 비약 같지만 병역의무 같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도 고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공공장소나 아파트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사납게 짖거나 하여 주민에게 불편과 고통을 주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에 사고유발 시의 물질적, 정신적 피해 보상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특히, 맹견뿐 아니라 소형견이라 하더라도 외출 시에는 반드시 목줄은 물론 입마개를 해야 하고 노상방뇨에 따른 경범죄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그러자면 개전용 공중화장실을 거리 곳곳에 설치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의 위생과 본능, 훈련에 대한 교양교육도 개 주인과 함께 정기적으로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알록달록 털 염색을 하고 사람처럼 방한복을 입히거나 가죽신발을 신기거나 치마를 입히는 등 요란하게 치장하여 이웃에게 당혹감을 주는 취미도 가급적 지양하도록 해야 한다. 개의 안전과 건강에 좋은지, 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서이다.
개는 품종이나 개인사정에 따라 구입가격이나 관리비용이 천차만별이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보통 아이 키우는 것만큼 어렵다고도 토로한다. 아니 더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개 사료비와 용품비, 미용비가 육아비용 보다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형매장에 개 용품 판매대가 한 코너를 완전 점령하고 있고 직구로 무공해 사료를 구입한다는 애견가도 있다니 그 물량과 정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애견가에게는 그저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상일 수 있겠지만.
하지만 아무리 법이 보호하고 지구의 환경이 변화한다하여도 개는 개일 뿐이다. 개가 진화를 거듭하고 황우석 같은 유능한 과학자가 나타나 개를 특수하게 개조시킨다 해도 인류의 한 부족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소중한 악기나 연인처럼 아끼고 사랑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여 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물질적 제공뿐 아니라 개를 개답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닐까 싶다. 개의 본능과 습성을 잘 살펴서 이웃사람과도 두루 즐겁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적절히 훈련을 시키고 질병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웃이나 가족처럼 사랑스럽고 다정한 지구의 한 일원인 개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