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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석(sbs3039)
시 처럼 살기
-벽년해로-

아직 내어줄
가슴이 있고
기댈 어깨가 있으니
우리 백년해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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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서로에게 마음이 되어 주는 일로
정 나눔 하는 사이





시詩사랑하기 바빠서 늙을 틈 없네*서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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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져야 또 만나지
2023-07-19
조회수 : 569

헤어져야 또 만나지

 

권 혁 수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그 사람과 헤어졌다 다시 만나면 더 기쁠까?

 

장마라 너무 무더워 밖에 나가지 못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머나먼 쏭바강이란 월남전 드라마를 유튜브에서 흥미 있게 보았다. 베트남 깐송마을의 여교사 빅 뚜이(린당 팜 분)와 한국군 참전용사 황일천 병장(박중훈 분)과의 사랑 이야기다. 안구건조증 탓에 눈에 넣는 인공눈물이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엔 거의 필요가 없었다. 헤어지고 만나고 그리고 다시 헤어지고 마침내 전쟁이 끝난 후 한국 땅에서 아들 황영규(베트남 이름 트랑)와 엄마 빅 뚜이의 해후. 하지만 모자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만남이 진하게 내 눈시울을 자극했다.

 

언젠가 <엄마 찾아 3만 리>라는 애니메이션이 우리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 아라비아 건설 열풍이 불던 때로 기억나는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아빠 찾아 3만 리> TV프로그램(EBS1)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조명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동남아 근로자의 아이들이 아빠를 만나기 위해 고향에서 이것저것 정성스레 선물을 준비하며 설레는 모습이 엄마 찾아 3만 리의 마르코를 보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둥해진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란 유행가 가사가 한때 유행했던 적도 있었다. 그 말을 실감하게 된 날이랄까, 어느 여름날인가, 여행지의 시원한 전원풍의 강변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데 한쪽 구석자리에서 한 젊은 여자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것이었다. 측은한 기분이 들어 카페 점장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자기 여고 동창생인데 남친에게 바람을 맞아 그런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이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누군가 점장에게 이제 친구 분은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네요.라고 말하여 씁쓸한 미소를 가미한 눈물 같은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삼삼하다.

 

사랑과 이별에는 눈물이 필수인가 싶다. 만나서 사랑할 때도 눈물, 그러다 헤어질 때는 더 많은 눈물.......

시인의 경우는 어떨까? 청마 유치환시인의 장례 때 세간에 알려진 정운 이영도시인의 추도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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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저만치 가고/나는 여기 섰는데/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돌아선 하늘과 땅/애모는 사리로 맺혀/푸른 돌로 굳어라

 

하늘과 땅은 분리 될 수 없다. 하지만 시인의 눈엔 하늘이 외면한 듯 떠나버려 원망스럽다. 우리는 흔히 기차역이나 터미널에서 연인들이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그러나 유치환시인은 졸지에 교통사고를 당해 그럴 수가 없었다. 얼마나 황망한가. 하지만 이영도시인은 그 황망함과 애절한 심정을 한 편의 시로 승화시켰다. 애모하는 마음을 수도승처럼 사리로 맺고 맺어 마침내 유치환시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푸른 돌, 망부석(望夫石)이 되리라 간절히 서원하는 것이다.

<고향집>

헌집신짝 끌고/나 여기 왜 왔노/두만강을 건너서/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엔/따뜻한 내 고향/내 어머니 계신 곳/그리운 고향집

 

193616, 국민시인 윤동주가 만주 용정에서 쓴 시다. 그는 어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주로 가야만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자나 깨나 오로지 고향과 어머니에게로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향과 어머니는 그가 떠나온,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최종 목적지인 것이다.

 

<죽은 스님을 곡함>

올 때는 흰 구름과 더불어 와서/갈 때는 밝은 달 좇아가시는가/

오고 가는 한 사람/필경 어느 곳에 가 계시리오.

來與白雲來 (래여백운래) 去隨明月去 (거수명월거)

去來一主人 (거래일주인) 畢竟在何處 (필경재하처)

 

서산대사가 제자의 죽음을 당해 애석해 하며 쓴 시다. 태어나는 일은 저 세상과 헤어져 구름과 더불어 이 세상에 오는 일이고 죽음은 이 세상 모든 것과 헤어져 밝은 달 좇아 저 세상으로 가는 일이다. 정처 없는 나그네의 삶이라 어디에서 온 것을 모르듯 또한 간 곳도 알 수 없다. 다만 어느 곳에 가있을 것이라는 예감뿐이다. 그 어느 곳(何處)은 어디인가? 서방정토인가? 천당인가? 어디인지 가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더 이상 가고 옴(去來)이 없는 평안한 마음의 고향(본래면목)이 아닐까 싶다.

 

기독교인들은 죽으면 요단강 건너 천국에서 만나자 하고, 불교인들은 황천 건너 서방정토에서 만나자 한다. 천국이나 서방정토나 그 종교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상향이겠지만 어쩌면 누구나 다시 살았을 때의 모습으로 정답게 만나자는 현실적 소망이 아닐까싶다.

누구나 작고를 하면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자기가 온 곳, 곧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리라. 그 고향에서 기다리는 어머니를 만나고 연인을 만나고 또 지금처럼 서로 다정히 만나자는 굳은 약속인 것이다. (물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지난달에 음악인 김진성 형이 애석하게 후두암으로 작고했다. KBS, TBS, MBC를 거쳐 CBS 라디오 PD840’, ‘세븐틴’, ‘꿈과 음악 사이로’, ‘올나잇 팝스등 인기프로그램을 연출하여 1970년대 통기타 음악을 이끌며 우리나라 포크음악 발전에 지대하게 기여했던 형이다.

어느 여름날이었나, 6년 전에 고인이 된 전진수 불교방송PD와 함께 서울 마포에서 점심을 먹을 때 형이 만나자 마자 나에게 요즘 많이 안정돼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에 참선명상을 열심히 하던 터라 나로선 그 효과가 있었는가 싶어 이전에는 어땠는데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형은 , 이전에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뭐 집어갈 거 없나 하는 눈빛이었지.” 하여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늦은 결혼이 흔한 일이지만 당시에 형은 일에 바빠서 그랬는지 40대 후반에 가서야 결혼을 했는데 가수 정형근형을 비롯해 많은 인기가수들이 하객으로 참석해 축하해주던 그날의 정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슬하에 딸 하나를 두었지만 이혼한 부인과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머나먼 쏭바강>의 황일천 병장네 가족처럼 성장한 얼굴이나마 한번 봤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전화 통화를 했을 때 형의 목소리는 방송할 때나 다름없이 차분하고 안정적이어서 가족에 대한 애증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또 후두암 말기였다는 사실도 몰라 내가 Y시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하자 형도 Y시에 누님을 뵈러 가끔 가니, 그때 보자고 약속을 했었다.

떠나는 형에게 이영도시인처럼 손 한번 흔들어주지 못했지만 서산대사가 떠나보낸 스님처럼 아니면 윤동주 시인처럼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러 필경 마음의 고향인 어느 곳(何處)으로 갔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거기서 나뿐만 아니라 아는 사람 모두에게 들려줄 음악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 예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