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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서봉석(sbs3039)
시 처럼 살기
-벽년해로-

세월에게는 정지 신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벌써 해거름 녘
세상이 붉게 저물어 가고 있다





시詩사랑하기 바빠서 늙을 틈 없네*서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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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2024-08-18
조회수 : 95

한 권의 책

 

 

그 서가에 가기 위해서는

하늘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목록 위엔 별이 새겨지기도 하지만

누가 찾아올 것인가

또 하루를 보냈다고

이 저녁을 침묵하고 있는 집들

나는 누구에게든 쉽게 읽히고 싶진 않았죠

그러므로 좀 더 속이 깊은 내용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안구건조증에 걸린 그대들이여

이 서가에서 나는 귀퉁이가 닳은 한 권 책이에요

해가 뜨고 지면 열리고 닫힙니다

하루가 따스하다고 느껴질 때 내가 만져져요

해와 달을 책장처럼 넘기며 나는 이곳에 머물렀고요

어둠에 항거하는 서사를 둘러앉히고

지금은 나를 펼쳐보는 시간이에요

저녁의 페이지를 넘기면

어두워질수록 어깨를 서로 부둥켜안는 산동네 집들

달은 나를 찾느라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달빛에 걸린 재개발 현수막

그 천 개의 입술이 자아내는 복화술이 들리는 밤마다

집들은 가슴에 하나씩 별을 나누어 달았어요

잠에서 막 깨어난 달빛을 다 끌어온 이 서가,

집들이 불빛들로 조용히

서로 인사를 나누는 건 오랜 관습입니다

고양이 울음이 달빛을 어슬렁 걸어 다니느라

불빛이 잠시 휘기도 하지만

나는 밤늦도록 불빛 반짝이며

이곳의 안부를 멀리까지 타전합니다

내일은 또 내일을 기다립니다

 

*여기 이 책 사진은 본 시 내용과 아무런 관계없음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