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신발을 딲다가 문득
내가 신발을 신고 다닌게 아니라 
신발이 나를 신고 다닌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 날
신발장 안에 있는, 샌달 형
슬리퍼 식, 그리고 목 단화 닮은 집적회로가
일제히 부르릉 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신다 버린 신발이 몇 켤레나 되고
또 그걸 신고 얼마나 많이 걸었을까 생각해 보니
손 바닥을 임의 제도 분할 한 손금이
천기 누설하는 타로 암호로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에는
아 장 걸음으로 봄 바람만 걸어 다녀서
딛기만 해도 말랑말랑한 꽃신 자국 뿐이었는데
발이 265mm 쯤 커지고 나서는
아예 한쪽으로만 닳는 뒤축 때문에
중심 선에서 벗어난, 궤적을 것 도는
어처구니가 됐는데
이제는 헐렁하게 늘어 지기까지 해서
바람도 신어보다 가고
그림자도 질질 끌고 다니는 걸,
어느 선이 근본에 닿는 길일까 궁리 해 보지만
아직도 헛 기침 터지고
취했다고 비틀거리기나 하는 속물로 서야
새로 신어봐야 여전히 십 문반 같은 보폭일 터
꼭 가봐야 할 길엔 아직 가본 일도 없지만
그렇다고 가지 말아야 할 진창은 피해 줬으니
새 신으로 새길 찾다 타향 살이 하게 되느니
낮 익힌 혼주魂主 함께 그냥 가는 수 밖에
그래서 지금도 여전하게 불 광 낸다고
침 무쳐가며 열심히 닦는다
거울처럼 비취이는 비로봉은 없지만
내 탓은 아니라는 듯 혼자 반들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