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린 그 녀석을 만나러 거기에 간다
-하인천의 추억
서봉석
팔월 염천 기차 오는 소리를 살피려고
뜨거워도 철길에 귀를 대고 있는 아이가 있다
철길 위에 올려 논 못이 바퀴에 눌려 납작해지면
그만, 그것이 그날 행복의 전부
칼로 갈거나 끝을 세워 송곳을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갈고리로 구부려서
바람에 걸어놓고 높이 오르는 것을 꿈꾸던
철없는 그 녀석을 만나러 거기엘 간다
자유공원에 올라서서는 맥아더 동상 옆에
꼭 이순신 장군 닮은 모습으로 서서
바다도 더 큰 바다로 가기 위해서는
파도 먼저 풍랑으로 물결쳐야 비로소
간만의 차 심한 세상을 건너
먼 나라 가는 뱃길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때
무작정 높이만 연 날던 꿈도 철 들어
거뭇하던 수염자리 제법 짙어지고
동화 속 같이 순한 문간 등이 켜진 그 골목집
사랑하고 처음 통성명한 곳이 바로 그 앞이라서
고향은 언제나 숨 가쁘게 그리운 곳
아침 놀, 분홍 구름이 일몰로 내리는 장엄한 서해를
갈매기가 흔들어 깨우는 항구
자장면이 태어난 청관 넘어 하인천으로
아직도 여드름에 떠꺼머리
늙을 줄 모르는 그 녀석을 만나러 거기에 간다
고향이 그리운 건 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놀이는 어른이 보기에는 이상해도 아이들의 마음은 세상을 살피는 것과 호기심을 풀어내는 최고의 시간이다.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고향을 떠나지는 않는다. 부모를 따라 이주하기도 하지만 태어난 곳에서 동무들과 동심의 세계를 펼친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찻길은 노량진과 인천이다. 일제의 침략에 놓였지만 50년대 후반과 6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은 고스란히 철길에 남았다. 서봉석 시은은 제물포의 철길 옆에서 살았다. 기차 소리에 깨어나 기차 소리에 잠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 놀이로 삼은 것이 철도에 못을 놓고 기차 바퀴가 누르고 지나가게 하여 납작해지면 송곳이나 칼을 만들어 놀았던 놀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고 지금 같으면 교통방해죄로 입건할 만한 일이다. 시인은 그런 시절이 아득히 지난 줄 알았는데 생생하게 살아있어 가슴 속에서 기차 소리를 듣고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철없던 시절이 최고의 행복이었다는 걸 갈수록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시절이다. 동화 속의 주인공 같았던 시절은 이제 꿈에서나 겪는다. 최초의 항구도시, 자장면이 태어난 곳, 그런 인천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가는 게 두렵다. 그래서 더욱 간절하게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그 녀석을 만나러 간다. 그 녀석이 살았던 인천을 떠나지 못하고도 그 녀석을 찾은 시인의 향토사랑은 남다르다. [이오장]
정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