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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석(sbs3039)
동백,그리움 찾아
왼 산 하나 가득 뭋이고 다닌
빨간 발자국

뉘 사랑에 익으며 왔는지
꽃,
참 붉다

서봉석의 시 '동백'중에서
시詩사랑하기 바빠서 늙을 틈 없네*서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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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구나! 시 좀 쉽게 쓸 수 없겠나?
2024-11-30
조회수 : 27

 

 

 

 

[포토에세이] 어렵구나! 시 좀 쉽게 쓸 수 없겠니?

 

[동백꽃과 새. 스마트 폰 사진]

   석양주 주석에서 오랜만에 만난 한 지인이 술잔을 채워주면서 퉁명스레 내뱉었다. “자네도 시를 쓴다니 한 마디 해야겠네. 요즘 시가 왜 이리 어렵나?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거 시인들한테 일러주게나. 좀 쉽게 쓰라고. 쉽게! 당최 알아먹어야 시집을 사든 말든 하지. 요새 시들이 시야? 주술사들 넋두리야?” 짐짓 고개를 끄덕이며 지인에게 수긍했다.  “자네 말이 맞네 그려. 하하~ 요즘 독특한 젊은 시인들 시를 본 모양이군. 그들을 미래파(未來派) 시인들이라고 하는데, 자네 같은 일반 독서인이 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일걸세. 2000년대 들어와서 오늘날까지 문단을 풍미하고 있지. 아마 그들이 보는 기성시단의 서정시는 쾌쾌 묵은 관념덩어리일거야.”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지인에게 미래파 시에 대한 아는 한도 내의 해명은 소용없었다. 윤동주와 정지용, 박목월과 서정주를 떠올리는 그에게 미래파 시의 실험적 환상, 괴기, 잔혹, 비속성, 장황한 산문형식에 대한 특질을 설파해봐야 혼돈만 더할 뿐이다. 아니, 시를 대승적인 삶의 인도적 구원이라고 믿는 그에게, 철저히 소승적이며 개인화의 결정(結晶)으로 보이는 미래파 시가 이해될 리 없었다. 문득 몇 해 전, 신춘문예에 당선된 한 나이 많은 시인이 당선소감으로 밝혀 꽤나 인상적이었던 글을 떠올려 본다. 작금의 문단을 풍미하고 있는 미래파류의 시들과, 무의미시, 산문시의 위세로부터 천우신조(?)로 당선한 경우라서 그런지 무척 기억에 남는 글이다.      

 

     

 “가끔 내 시를 들여다본다. 묵은 냄새가 난다. 수백 년간 궤에 담겨 있던 도자기 같은. 이 골동품의 가치는 아는 분만 알 터. 남들이 낡았다고 외면하는 시에 낙점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늘 서정 빛을 띄는 나의 시심에 한숨짓는다. 이른바 미래파적인 시, 현란하고 실험적인 산문시를 보면 주눅이 들 때가 많다. 내 시는 고풍스러운 것인가, 촌스러운 것인가? 자주 반문해 본다.

 당선 소식은 움츠러든 나를, 내 시의 제목처럼 어루만져 준다. 나는 시류(時流)를 따르지 않고 나만의 시를, 아래 같은 시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한글 맞춤법이 정확한 시, 인문학적 소양이 배어나는 시, 미학과 철학이 겸비 된 시, 당대의 문제를 직시하는 시, 사회적 성찰이 깃든 시, 그래서 사유가 깊은 시. 누군가의 삶이 내재된 시, 타인을 배려한 시, 독자와 소통하는 시, 언어를 추구하지 않는 시, 화려함과 속됨에 기대지 않는 시, 무목적적인 시, 그래서 살아 있는 시.”

 

 

  그렇다. 지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시는 읽기 편하고, 경건하고 건강한 사유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갈수록 노령화되는 문단의 사정상,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낡은 서정을 고집해서도 안 되겠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의 사회에 대한 절망감이 표출되는 개인화와 내면화의 깊은 고통을 외면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지인과 같은 일부 독자들은 미래파류와 같은 시에 대해 계속 어렵다며 시집 사기를 주저하는 현상이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설령 일반 독자들이 시를 읽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미래파류 시인들도 독자들이 겪고 있는 시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경청했으면 한다. 시는 시일뿐이다!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다! 내 시에는 어떠한 논리적 해석도 필요 없다! 라는, 지적 오만함을 표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기 홍]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인천지역위원회 회장 . 갯벌문학회 상임고문. 제4회 해양문학상 수상. 저서 시집 ‘가을하늘 고흐의 캔버스’  수필집 ‘은빛 매미의 눈망울’  시산문집 ‘출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