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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석(sbs3039)
시 처럼 살기
-벽년해로-

아직 내어줄
가슴이 있고
기댈 어깨가 있으니
우리 백년해로에
아쉬울 일 없다
부부란 서로에게 마음이 되어 주는 일로
정 나눔 하는 사이





시詩사랑하기 바빠서 늙을 틈 없네*서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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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 공혜경 시낭송가의 시낭송 퍼포먼스를 보다   
2023-03-28
조회수 : 1126

원시인, 공혜경 시낭송가의 시낭송 퍼포먼스를 보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그 인기가 절정에 이르자 시는 청소년들의 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7080세대와 격리되는 또하나의 시대 반영이 있었으니 그것은 기성세대의 반항적인 노랫말로 1990년대 세기말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렸다. 가방 속에 누구나 한 권쯤 넣고 다니던 시집 대신 노래 테잎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들을 수 있는 워크맨이 등장하면서 청소년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활자가 주는 시보다는 음악이 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CDP가 나와서 음질을 높여주었고 MP3가 나오면서 기기를 소형화시켰으며 수십 수백곡을 작은 기기에 담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시집은 아이들의 손을 떠났다. 나는 여중학생들에게 중학교 생활에서 외울 암송시 30개를 마련해 시를 외우게 하고 시창작반을 통해 시쓰기를 가르쳤다. 그래도 아이들은 시집을 사지 않았다. MP4는 그 조그마한 기기에서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용량도 메가에서 기가로 늘어나게 되었다. 기기의 발달은 시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스마트폰에 빠진 요즘 아이들은 시뿐만 아니라 아예 책을 멀리하고 정서적으로 메말라가고 있다. 난 여전히 문예작가반을 동아리활동으로 가르치고 각종 문예 공모전이나 백일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지만 시는 여전히 늙어가시는 어머님의 몸무게가 빠지듯 그 무게를 잃어가고 있었다. 책도 잘 안 팔리지만 시집은 거의 팔리지 않고 있다. 시집을 출판하여 100만부는 커녕 1만부도 팔리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시가 대중 속에서 잊혀지고 몇몇 시인들의 가슴에서 제 울음인 양 메아리치는데 이번에 '공혜경 시낭송가의 시낭송 퍼포먼스'를 보면서 시도 공연 무대로 특화를 시키면 얼마든지 감동을 주고 시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공혜경 원장(한국시낭송공연예술원 원장)은 우리나라 시낭송에 대가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젊어서 연극을 했기에 평이한 시낭송을 연극으로 승화시키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목소리가 감칠맛이 있어 듣는이의 심금을 자아낼 수 있었기에 시낭송가로 우뚝설 수 있었다. 그러기에 CD를 제작하고 내로라는 시낭송 자리에 감초처럼 빠질 수가 없는 분이다.

    처음 공혜경 원장님을 알게된 것은 우연히 네이버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다가 내가 보훈처에서 실시한 추모헌시에서 우수상을 받은 "국립묘지에서"가 공혜경 원장님께 낭송이 되었던 것이다.[조선일보에 기사화 됨, 시낭송 소식(조선일보)] 그 긴 시를 다 외워서 낭송하신 그 모습에 대단한 존경심을 느꼈다. 그리고 동영상을 검색하여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공혜경 시낭송가의 시낭송] 이번에 출간된 시집 "우리는 바다였노라"도 보내드리고 연락이 되던 차에 카톡을 통해 시낭송 퍼포먼스 공연을 연락 받았다.  

   시낭송은 시 낭독과는 달리 시를 암송하여 낭송하는 것인데 시를 암송하다보면 시의 깊이를 체득할 수 있게 마련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동네에서 동창생들끼리 시암송을 한다든가 첫사랑의 여인이 편지에 시를 적어 보내주면 다 외워 버렸다. 그 덕에 20여편 정도 외웠는데 시를 외우면서 느꼈던 것이 "시를 5편 외우면 국어 성적이 90점 이상 올라가고, 시를 10편 외우면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지고, 시를 20편 외우니 저절로 시인이 된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나는 군대생활을 하면서 보초를 설 때면 윤동주 님의 "별 헤는 밤"을 외웠고, 사랑하는 여인과 데이트를 할 때는 김남조 님의 "너를 위하여"를 외웠다. 삶이 버거울 때는 롱펠로우의 "삶"을 외웠고, 세상의 유혹이 있을 때는 역시 윤동주 님의 "서시"를 외웠다. 외로울 때는 박인환 님의 "목마와 숙녀"를 외웠고, 그리운 때는 역시 박인환 님의 "보고 싶은 얼굴"을 외웠다. 나는 시낭송가는 아니지만 언제나 아이들 앞에 서면 시를 낭송할 수 있다. 

   암튼 이번 시낭송 퍼포먼스를 보면서 시도 낭송과 연극, 그리고 영상을 잘 조합하면 멋진 공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죽어가는 시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죽기까지 잊혀지지 않을 공연을 본 것 같아 뿌듯했다. 함께 갔던 서봉석 시인님과 임솔내 시낭송가님, 그리고 백암 여행작가님과 피자도 먹고 음료도 먹으면서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공혜경 원장님은 이제 시낭송의 정상에 우뚝 섰다. 후학들을 위해 가르침의 길을 열고 좀더 멋진 공연을 이어나가 시낭송 전용 극장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윤동주 이육사를 떠나 새로운 젊은 시인들의 시를 자꾸 낭송해 줌으로서 좋은 시를 발굴하고 국민들이 낭송하고 듣기를 반복하여 시가 다시 대중화 되는데 기여해 주시길 바란다.

   우리네 시인들이여! 대중이 감동할 수 있는 시를 쓰는 일에 좀더 노력하자. 적어도 우리의 선생님들이 우리의 가슴에 심어준 시의 싹을 우리가 자라게 하고 가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후세들이 각박한 세상에 오아시스처럼 시를 마시고 시의 그늘에서 쉬기를 바란다. 공혜경 원장님 너무 멋졌습니다. 제2 퍼포먼스를 기다리겠습니다. ^^*

 

 

 

 

원시인 임솔내(시인, 시낭송가) 한명희('비목' 작사가) 서봉석(시인) 백암(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