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벽년해로-
아직 내어줄
가슴이 있고
기댈 어깨가 있으니
우리 백년해로에
아쉬울 일 없다
부부란 서로에게 마음이 되어 주는 일로
정 나눔 하는 사이
블로그 상세 보기
- 모두 보기
- 모셔온 글 ,동영상
- 경희문인회
- 전싱국 예술원회원
- 한명희 예술원회원
- 정대구 시인
- 이영춘 시인
- 유보상희곡작가
- 김영무 희곡작가
- 공혜경 시인과 포에라마
- 권혁수 시인
- 김리영 시인
- 목필균 시인
- 문경남 시인
- 이순주 시인
- 유지희 시인
- 최지하 시인
- 위상진 시인
- 테너 김철호
- 안연옥 시인
- 시인 강만수
- 한기홍 시인
- 임솔내 시인
- 서봉석.홈지기
- 연극을 팝니다..
- 풀잎사랑박용신의 포토 에세이
- 소향 그리고 아즈마 아키
- 신간안내
- 각종 기사 서평 / 이오장 시인함께
- 명품(그림.사진.음악,그리고 또)
- 이 창섭의 수석이야기
- Photo Zone 찍사 시절
- 신규 메뉴
- 신규 메뉴
- 신규 메뉴
아바타의 위치
권 혁 수
산에서는 핸드폰 배터리가 쉬 방전된다고 한다. 핸드폰이 통신지국의 안테나 신호를 잡느라 내부시스템을 부단히 움직이기 때문이란다. 생명(배터리)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핸드폰이 너무나 대견스럽다. 마치 충실한 비서 같다.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서비스를 다 해주는 무보수 비서랄까. 아니 비서라기보다 어쩌면 나의 비밀과 일상을 다 알고 있어 나보다도 더 나인 것 같기도 하다. 하여 언제인가부터 나는 핸드폰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비약인지는 몰라도 심지어 다정한 어머니 같기도 하다. 밤마다 자장가랄까, 수면용 음악을 들려주어 나를 잠들게 하고, 내가 잠든 동안에는 메일이나 각종 정보를 알뜰히 챙겨서 아침이 되었다고 어서 일어나라고 알람을 울려주는 것이다.
하루는 심심하여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 AI(인공지능)에게 사랑의 시(詩)를 써달라고 요청도 해보았다.
<사랑>
사랑은 눈부시게 빛나는 꽃이며, 아픔과 고통을 잊고
희망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존경하며, 존중하며 이해합니다
사랑은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공유하며, 서로를 보살피며,
서로를 위해 노력합니다.
누군가가 기 입력해 놓은 사랑에 대한 시구(詩句)를 조합한 것이겠지만 읽을수록 공감이 가고 가족, 친구, 연인의 사랑에 대해 부족한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놀랍고 부끄럽다.
AI는 내 핸드폰의 아바타(avatar) 같다!
<아바타1> 영화 중에 아바타 남자(제이크 설리)가 여자 아바타(네이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I see you. (나, 너 사랑해)” 그 말은 아바타의 주인인 샘 워싱턴(제이크 설리 역)으로선 전혀 몰랐던 낯선 말이다. 물론 영화 속의 아바타 끼리만의 감성적 언어인데 과연 현실적으로 우리에게도 가능한 현상일까? 내가 모르는 말을 핸드폰끼리는 서로 소통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하는 말이다. 추측컨대 그런 것 같다. 아니 그렇다. 핸드폰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감성적 언어를 누군가와 시도 때도 없이 교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가 내가 무엇인가 난감한 문제가 생겨 물어보면 곧바로 그 누군가의 언어로 해답을 들려주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핸드폰의 아바타인 셈이다.
나의 낡은 구두의 사정은 어떤가?
<구두>
나는 오늘
그가 가는 길을
걷고 있다
나의 졸시 이다. 나는 이제 핸드폰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듯 구두와도 함께 인생길을 걷고 있다.
문뜩, 나와 같은 처지의 신현정 시인(2009 졸)의 구두도 기억난다.
늘 검정가죽구두만 신고 다니던 그가 어느 여름날인가, 미국에서 딸이 귀국하여 가죽구두를 사주었다고 자랑을 하던 기억이다. 그날이후 그는 마치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시동호회 모임에 참석하듯 밝은 얼굴로 그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갈색구두를 신고 우리를 만나러 왔었다.
신현정 시인처럼 나 역시 구두를 신고 매일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그들은 고객이 아니라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나의 동반자들이다.
어느 스님이 한 말씀 들려준다.
“길 가는 나그네가 남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나서 주인을 안 찾아보고 그냥 가면 무뢰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평생을 살았으면서 이 몸의 주인을 안 찾아보고 저 세상으로 간다면 되겠는가?”
내 내면에 나 말고 핸드폰이나 낡은 구두처럼 양태가 다른 존재가 따로 또 있다니, 그런데 그게 주인이고 나는 손님이라니, 대저 무슨 말인가?
게다가 손님인 내가 내 속에 있는 주인을 아직도 못 만나고 있다니,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라디오에서 <오프라 윈프리>의 명상적인 한 마디가 굿모닝 팝스 진행자(조정현)의 입을 통해 들려온다.
『당신이 바라거나 믿는 바를 말할 때 마다, 그것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당신이다.(Every time you state what you want or believe, you are the first to hear it.)』
지금까지 주절거린 사람은 나이고 말을 들은 사람도 바로 나인데, 그런데 그런 내가 손님이란다. 그럼 주인은 내 몸속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것인가?
알 수 없다. 내 몸의 주인과 만나는 날을 정해봐야겠다. 바로 오늘.
눙크 스탄스(nunc stans/정지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