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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서봉석(sbs3039)
시 처럼 살기
-벽년해로-

아직 내어줄
가슴이 있고
기댈 어깨가 있으니
우리 백년해로에
아쉬울 일 없다
부부란 서로에게 마음이 되어 주는 일로
정 나눔 하는 사이





시詩사랑하기 바빠서 늙을 틈 없네*서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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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희 시인의 우주
2023-11-15
조회수 : 450

<유지희 시 5>

 

둥근 우주·1

 

 

새벽 풀밭에 방울방울 맺힌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동그란 언어의 우주와 마주한다

 

찰나의 풀잎과 교감(交感)

해 뜨기 전 적막 속으로

동그란 우주는 소멸하고

다시 피안에 이르는 둥근 우주

 

 

 

둥근 우주·2

 

 

초승달을 보면서 보름달을 기다린다

우주로 가는 시간은 아득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은 아니기에

달빛 머금은 한 송이 들꽃이 된다

 

꽃잎이 둥글고 향기마저 둥근 들꽃

기다리는, 백자 항아리

둥근 우주다

 

 

둥근 우주·3

 

 

 

새들은 바람이 부는 날 집을 짓는다

높은 나뭇가지에 천 번을

날아다니며

새들이 짓는 우주의 집

 

새끼들을 길러내고

세상 밖으로 날게 하는 어미의 사랑

 

바람과 나뭇가지가 짓는

비밀스런 새들의 집

 

 

오후 다섯시에 찍는 흑백사진

 

 

9월 오후

그 시간쯤의 햇빛은 가히 환상적이지

아침 혹은 점심나절의 햇빛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슴에 찌릿한 순간의 통증을 동반하고

물처럼 스며드는 석양의 바로 직전

흑백사진을 찍는다

 

흑백 웃음 짓는 눈을 들여다보며

조금씩 비워지는

마음의 무게를 저울질 해 본다

 

 

달팽이

 

 

그가 가는 길은 더없이 고요하다

고요하지 않으면 천천히 갈 수가 없다

치열하게 아름다운 더듬이로

무거운 집을 옮기며

오로지 앞만 보고 가는 당당함, 명치 끝이 울린다

 

그가 가는 길은 젖어 있다

젖지 않은 길은 갈 수가 없다

치열하게 아름다운 더듬이로

생각의 수레를 밀면서

사막을 건너듯 가는 인내심, 가슴이 흔들린다

 

그가 가는 길은 피안이다

피안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

치열하게 아름다운 더듬이로

천상의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 눈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