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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석(sbs3039)
시 처럼 살기
-벽년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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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백년해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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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나눔 하는 사이





시詩사랑하기 바빠서 늙을 틈 없네*서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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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얼룩말띠 사랑/글. 권혁수
2023-11-23
조회수 : 455

얼룩말띠 사랑

 

권 혁 수

 

쥐띠, 소띠, 호랑이띠.......

좋건 싫건 누구나 하나 씩 갖고 태어나는 것이 <>.

무슨 띠세요?하고 묻는 것은 바로 나이를 묻는 것이다.

그래 그런지 주변에 이 띠를 마치 자신의 숙명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토끼띠는 토끼처럼 온순하게 행동하려 하고 범띠는 자신이 범인 양 용맹하고 씩씩하게, 개띠는 간혹 개 같이 행동하려 하는 것이다. 닭띠인 나도 어쩌다 식사도중에 밥알을 흘리기라도 하면 <내가 닭띠라서 그런가!>하고 생각을 해보곤 한다.

오래전부터 말띠 해에 태어난 여성들은 결혼적령기에 심히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다. 말에 대한 몰이해와 남성 우월주의에 따른 현모양처를 선호하던 시대에 거슬리는 사고 곧, 말띠는 팔자가 사납고 드세다는 근거 없는 속설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 경오년(庚午年) 말띠 해에는 <백말띠 해>라 하여 오히려 그해에 태어난 딸들을 선호하고 축하하기도 하여 페미니즘 시대랄까,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술적인 심리도 있다. 무슨 띠는 무슨 띠와 만나야 잘 산다느니 무슨 띠를 만나면 불행하다느니, 점쟁이의 상술에 속아 근거 없이 운명을 점치는 무지하고 불안한 심리가 그것이다. 다만 주술적이라 하더라도 수호신처럼 특정한 동물인형을 모으는 경우는 정서적 안정을 찾는 심미적 취미생활이라 여겨져 오히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아는 어느 지인은 기린을 좋아하여 기린 인형을 모으고 있다는데, 혹시 어린 시절에 목격한 엘리자베스테일러나 오드리 햅번 같은 배우나 나오미 캠벨 같은 모델처럼 목이 길고 키가 늘씬하게 크고 싶었던 욕망이 그렇게 선택을 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또 다른 동물 인형을 수집하는 시인들도 있다.

이탄 시인(본명 김형필, 2010년 작고)은 부엉이 인형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서재의 한쪽 벽장이 다 차고 넘칠 정도로 각국의 인형들을 모아들였고 미네르바란 제호의 월간 문학잡지를 발간했을 정도였다. 미네르바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신을 상징하는 부엉이를 말하는데, 어쩌면 이탄시인은 그런 부엉이처럼 밤에도 눈을 뜨고 글을 쓰는 시인으로 평생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가하면 박희진 시인(예술원 회원, 2015년 작고)은 두꺼비 인형을 열심히 모았었다. 어느 해 가을이었던가, 서울 성북구 방학동 그의 서재에 들렀을 때, 탁자는 물론 책 더미 사이사이에 놓인 세계의 모든 두꺼비를 다 만나볼 수 있었다. 지금은 누가 그 두꺼비들을 보살피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대의 미남(美男)시인으로 정평이 나있던 그가 조금은 흉측해보이기까지 한 두꺼비를 왜 그렇게 많이 모아들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설적으로 두꺼비는 집지킴과 재복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하여 혹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그로서는 집지킴이가 필요했을 것이고 청빈한 시인이다 보니 재복의 상징인 두꺼비를 일생 반려자로 삼았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 대시인들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나도 얼룩말 인형을 소소하게 모으고 있다. 시집 얼룩말자전거를 상재하고 나서 모으게 되었다.

200912월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동물원 소속 얼룩말 두 마리가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굶어죽었던 사건이 계기였다.

당시에 얼룩말이 너무 비싸서 새로 구입하기가 어려워지자 동물원운영자 모하메드씨는 굶주림을 잘 견디는 당나귀 두 마리의 가죽에다 얼룩말무늬 페인트칠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인기가 폭발하여 아이들이 그 당나귀얼룩말을 보러 구름 같이 모여들었고 이 기발한 토픽이 세계적으로 외신을 타는 바람에 이스라엘은 결국 봉쇄를 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솔직히 온대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일생 얼룩말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히 그 신문기사를 읽고 나서 심적 충격을 받아 시를 쓰게 되었고, 그 얼룩말무늬의 의미를 나의 남은 삶의 좌표로 삼게 되었으니 얼룩말과의 인연이랄까,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그날부터 나는 얼룩말무늬와 인형을 부단히 찾아다녔다. 재활용품점에 들러 구입하거나 동네 벼룩시장에서 아이들이 파는 것을 구입하기도 했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여행을 가는 지인이 있으면 기념품가게에 들러 구입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심지어 동네생활용품가게에서 파는 얼룩말무늬 테이프를 구입하여 자전거에다 부착하고 얼룩말을 타는 기분으로 라이딩을 하기도 했다.

이참에 그 때 쓴 졸시를 한 편 올려본다.

 

<얼룩말 당나귀 자전거>

삶이 심심해지면/자전거 안장에 얼룩말 무늬를 그려 넣고 냅다 올라타는 거야

얼룩무늬 엉덩이가 꿈틀거릴 때/아이들이 즐겁다고 박수칠 때

너무 기뻐 눈물이 날 때/목 길게 빼고 코를 벌름거리며

고수부지 건너 강물을 넘겨다보는 거야

자전거의 운명에 착 달라붙어/바람 찬 말발굽 고무타이어를 굴리며

 

팔레스타인 동물원까지 가보는 거야

가난한 모하메드 씨가 당나귀 등에 얼룩말 무늬를 염색해/전시했다는

가자시티에 가보는 거야

(후략)

 

얼룩말은 영어로 zebra라 한다. 횡단보도(zebra crossing)와 같은 안전지대를 표시할 때 쓰이는 낱말이다.

작금에 또다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봉쇄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경우야 어떻든 하루빨리 얼룩말무늬 같은 <안전지대>가 설정되어 서로서로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해본다. 아울러 다음번 돌아오는 말띠 해는 <얼룩말띠>로 정하면 어떨까, 제안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