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입니다
-벽년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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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우연히 떠돌이 고양이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다. 고양이는 1층집 S씨네와 독신자 P씨가 사는 지하 방 사이 벽과 담장 틈새 어딘가에 숨어살고 있었는지 이따금 울음소리가 벽을 타고 우리가 사는 2층까지 들려왔다. 마치 또 다른 불량 가구와 동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는 꼭 이웃집 아기가 젖 달라고 우는 것 같은 애끓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고양이 울음소리라고 아내가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요란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짜증을 냈더니 아내가 또 어디서 들었는지 고양이들 <사랑싸움>이라고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을까, 이번엔 털색깔이 알록달록한 새끼 고양이들이 오르르 계단과 담벼락을 종횡무진 내달리는 경이로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자연의 섭리랄까, 아이들은 좋아라 했다. 하지만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우려돼 아내는 창문을 단속하고 새끼고양이들을 방에 들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더 큰 골치는 고양이새끼들이 성장을 하면서 여기저기에다 마구 똥을 싸대는 것이었다. 냄새가 역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에서 새끼토끼를 사와서 기른 적이 있었는데 그 토끼들 오줌 냄새보다도 더 역한 것 같았다.
하여 고민 끝에 흙에서 뒹굴었을 야성적 습성을 고려하여 계단 옆 작은 공간에다 벽돌을 동그랗게 쌓고 낡은 화분의 흙을 뿌려놓아 보았더니 대부분 거기에다 똥을 누는 것이었다. 신통했다.
그러다 해가 가고 전세계약기간이 끝나 이웃 사람들처럼 그 고양이들과도 이별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던 2층에는 어느 교회 원로목사님이 이사를 왔는데 우리는 목사님에게 벽과 창문이 너무 낡아 겨울에는 북극만큼 춥고 여름엔 적도보다 더 덥다는 등 환경사항만 들려주었고 고양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떠돌이 고양이들이라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으므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고양이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동창회나 동호회 회원명부에 주소를 이전했음에도 일부 회원이 이전 주소로 택배나 우편물을 보내왔기 때문에 가끔 시장을 보거나 등산을 가는 길에 들러 고양이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초가을 어느 휴일인가. 그날도 등산가는 길에 우편함을 들여다보고 고양이들이 여전히 똥을 잘 싸고 있나 싶어 똥밭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똥밭에는 나팔꽃 푸른 덩굴 잎이 무성했고 그 푸른 잎 사이로 보라색 나팔꽃이 몇 송이 고개를 들고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화사했다. 연한 보랏빛이 그 좁은 마당과 그늘진 골목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 같았다. 아, 이런 곳에 꽃이 피다니! 누가 일부러 심지 않았는데도.......
순간, 소리 없는 소리, 나팔꽃의 나팔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아니 가슴을 울리는 것 같았다. 함께 바라보던 아내도 신비스러운 눈으로 감탄을 한다.
“저 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는 예수님의 산상의 수훈이 때마침 허공에서 들려왔고, 세상에는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반야심경의 한 구절도 새삼 느껴졌다.
시집도 한 권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누군가 나를 잊지 않고 보내준 시집이다. 시집을 펼쳐보았다.
꽃도 제 가슴에 생채기를 낼 수 있다/번갯불처럼 눈을 멀게 하는 꽃
천둥처럼 귓전을 울리는 꽃/눈 마주칠 적마다/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텅 빈 늦가을 뜨락을 지키는 저 외로운 파수꾼이/머리에 이고 지고 있는 붉디붉은 생각들도/차가운 밤이슬에 색이 바래간다 (중략)
황원교 시인의 시집 <꿈꾸는 중심>에 실린 <맨드라미를 위한 사화>라는 시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 시 속의 주인공 맨드라미를 본 적이 있다. 꽤 오래 전, 어느 가을이었다. 황시인이 살고 있는 청주 출장길에 황시인네 집에 들러 하룻밤 신세를 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콘크리트로 포장된 황시인네 집 마당가운데 붉은 맨드라미가 한 송이 피어있었던 것이다.
가수 강원래씨처럼 30여 년 전에 교통사고로 경추를 다쳐 전신불수가 된 황시인은 어느 늦은 가을밤에 파수꾼처럼 집안을 지키고 아침을 깨우는 그 조선 장닭의 붉은 벼슬 같은 맨드라미를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쓴 시이리라. 침대에만 누워있는 아들을 보살피다 쓰러진 그러나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 하려 무진 애를 쓰셨던 황시인 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이제는 아내 헬레나(유승선)씨가 자신은 세 번이나 암수술을 받아가면서까지 헌신적으로 그를 지탱해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그런 와중에도 시집을 세 권이나 내다니, 실로 놀랍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는 늘 누워서 창밖을 내다보며 밤낮 없이 하늘을 들여다보고 글을 쓰고 또 이따금 문화강연을 다니는데, 지금은 헤드마우스라는 안경형 전자기기를 사용하여 글을 쓰지만 당시에는 쇠젓가락을 이빨로 물고 실로 힘겹게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가며 글을 썼었다.
최근에는 <0.23초>란 제목의 다섯 번째 시집을 상재했다. 인간이 사는 시간이 우주의 나이 138억년에 비겨 불과 0.23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유효기간>이란 성찰의 시가 실린 이 시집은 그가 다시 주소를 확인하고 보내주어서 이번엔 제대로 받아볼 수 있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 가지쯤 인연의 꽃이 있을 것이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아니면 운명적인 어떤 의미가 담긴 꽃이거나.......
간만에 그 2층집 앞을 지나 등산을 가다보니 외출했는지 아니면 이사를 갔는지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고 우편함도 텅 비어있었다. 나팔꽃만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오후에는 모처럼 황시인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시집을 잘 받았다는 안부전화와 함께 올해에도 여전히 맨드라미가 곱게 피었는지 궁금해서. 그런데 애석하게도 맨드라미는 황시인 아버지가 작고한 그해부터 피지 않는다고 한다. 하여 그는 대신 맨드라미 그림을 거실 벽에 걸어두고 매일 바라본다고 하는데 그 그림은 황시인이나 아내 헬레나가 몸이 성치 않아 콘크리트 마당을 깨고 맨드라미를 심거나 화분에 가꿀 수가 없어 마련한 그림이라고 한다. 그 그림은 그가 수원시립도서관 초청으로 대중 문화강연을 하던 날, 우연히 관람하게 된 어느 화가의 작품전시장에서 그날 받은 강연료로 구입한 그림이었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졌는지 바람이 스산하다. 그의 아버지 초상화 같은 맨드라미 그림도 볼 겸 가을이 다 저물기 전에 시간을 좀 내봐야겠다.